[GEHENNA] 고해
천사의, 천사를 향한
BGM : Johannes - Reminiscence
“분명 이전까지만 해도 제가 위로를 건네는 입장이었던 것 같은데… 이젠 그 반대네요. 챙김 받는 입장이 되는 건 여전히 익숙하지 않습니다.”
…언제부터였지, 타인의 선의를 이리도 부정하고 의심하기 시작하던 때가.
천사 아르페의 삶이란 막힘없이 펼쳐진 높고 고요한 하늘이라 할 수 있겠다. 아무런 장애물도, 위험도 없는 공간에 오로지 자기 자신만이 존재하므로 그저 날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머리 위 빛나는 고리는 선함의 상징이고, 새벽의 하늘을 담은 푸른 눈동자는 그에게 영원한 평화를 약속했다.
그래, 그는 ‘타고난 운명’마저 완벽한 자였으며 이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였다. 신성한 이름의 기원은 '알파(Alpha)'요 의미는 모든 것의 처음과 시작이니, 혀끝과 몸짓에 자연스레 두른 오만한 태도는 순수라는 베일에 가려 누구에게도 지적 받는 일이 없었다.
제 생각과 행동이 곧 선악의 기준이 되리라. ‘나’는 ‘천사’니까.
그리고 여기, 잊힌 - 잊고자 하는 - 기억의 한 조각이 있다. 이젠 더 이상 얼굴조차 기억이 나지 않지만 제국군의 일개 병사일 적까지만 해도 곁에 있으면 즐거운 가깝고도 소중한 존재가 있었다. 가족이라 불렀던가, 아니면 친구라고 불렀던가.
"있지, 아르페. 우리도 태어날 때부터 무조건 천사의 자격이 주어지는 건 아닌가봐. 너는 절대적인 선이 있다고 생각해?"
"이승 좀 그만 들여다봐. 대체 뭘 봤길래 그런 이상한 말을 하는 거야?"
우습게도 이 장면만 겨우 기억에 남아 여전히 머릿속을 빙빙 맴돌고 있다. 변덕인지 사정인지 그는 이 대화를 마지막으로 홀연히 자취를 감추었다. 안일하게 넘긴 하루하루를 지나 드디어 이상함을 감지했을 찰나, 이미 때는 한참 늦어 행방을 알 방도가 없었다. 감히 천사의 자격을 들먹이다 지옥으로 추락한 건지, 인간사에 과하게 몰두하다 이승으로 떨어진 건지. 그때 무언가 답이라도 했다면 당신은 떠나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저의 죄목은 회의를 느꼈음에도 행한 침묵과 방관이렷다.
선과 악의 기준이란 무엇일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사라지자 그제서야 답을 찾는 것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답 대신 밀려오는 자기 존재에 대한 불신, 어쩌면 자신이 선하다 믿어온 모든 것들이 그저 꾸밈과 치장에 지나지 않았을 거라는 불안.
조건 없는 선함이 존재할 리 없었다. 태생부터 '천사가 될 자격' 따윈 없었다.
저를 향한 누군가의 말 한 마디도 그냥 쉬이 넘길 수 없어, 선의를 선의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 속에 숨겨진 의미를 머릿속에서 몇 번이고 계산하고 비틀었다. 넓은 하늘을 날던 새는 방향을 틀어 스스로 새장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갔다. 가끔씩 저를 쓰다듬으러 오는 우위의 존재에게 머리를 숙일 뿐이었다.
“제가 받은 걸 돌려줬다고 생각해주십쇼. 그럼 좀 편하지 않겠습니까?”
상념에 빠진 제 손을 누군가가 붙잡는다.
선글라스 너머로 비치는 심지 곧은 푸른 눈동자, 새까만 머리 위로 빛나는 아름다운 천사의 상징. 한결같이 저를 볼 때마다 웃어주던 얼굴, 등 뒤는 제게 맡겨달라던 믿음직한 말투, 소중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꿋꿋한 의지. …어깨에 닿은 몸의 미세한 떨림, 힘들다며 저를 감싸안던 팔, 괜찮다는 말 속에 숨겨진 두려움, 손에 들린 총구가 바닥을 향할 때마다 느껴지던 의미 모를 나약함.
아아, 어찌 이리 다정하고도 정직할 수 있는가?
당신의 말과 행동에선 한 점의 거짓도 묻어나지 않네요.
“비슷하네요. 사실 저도 누구를 챙기는 쪽이 더 익숙하답니다.”
“누군가가 챙겨주는 건…”
“아직까지도 좀 부끄럽더라고요.”
챙그랑.
십자가가 바닥으로 떨어진다. 차가운 금속 대신 저를 붙잡아 준 당신의 손을 마주 잡아, 검은 장막 너머로 보이지 않는 눈을 마주한다. 친애하는 길베르트, 한때 인간이었던, 저와는 달리 '자격이 주어진' 천사. 무엇이 당신을 천국으로 이끌었는지 궁금합니다. 당신의 선함에는 무언가 특별함이 있나요.
제가 찾던 답이 아니라 해도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분명 끝에는 당신의 위로가 있을지어니.
"익숙함은 경험에서 우러나는 것이지요. 그럼 제가 변함없이 지켜봐드리겠습니다. 혹 당신이 불안해하지는 않는지, 두려운 것은 없는지."
"가끔은 기댈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마음이 편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아마도 지옥으로 떨어진 것이 제법 두려웠나 봅니다.
다시는 꺼내지 않겠다며 몇 번이고 함구한 말이
그대 앞에선 이리도 쉽게 나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