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릭/기타

아제로 프로필

션비 2025. 6. 17. 11:48

 

아제로

Azero

 

본명 :

성별 : 남성

생일 : 7월 30일

나이 : 20대 후반

키 : 190cm

 


 

<외관>

 

 

  그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쉽게 다가가기 어려운 인상을 받을 것이다. 크고 단단한 체격에 더해진 무표정한 얼굴, 무게감 있는 분위기, 그리고 쉽게 농담을 주고받을 것 같지 않은 딱딱한 인상이 자연스레 거리감을 만든다. 실제로도 그는 말수가 적고 분위기를 가볍게 흘려넘기지 않기에 첫인상에서 호감을 얻은 적은 드물다.

 

  새카만 머리카락은 항상 차분히 가라앉아 있으며, 짙은 붉은 눈동자는 전투가 고조되거나 빛이 반사될 때 마치 화염처럼 붉게 타오르듯 빛난다. 키는 190cm로 큰 축에 속하며 체형도 전체적으로 선이 굵고 탄탄하다. 손도 평균보다 크고 넓은 편. 피부는 하얗지만 햇볕에 오래 노출되어도 쉽게 타지 않는 것을 보면 유전적인 특성이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성격>

 

  신중하고 고상한 성격. 어릴 적부터 고위층 자제에 걸맞은 예법과 학문 교육을 받아왔으며, 책을 가까이하며 자라난 비교적 조용한 아이였다. 그런 성향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도 이어져 어떤 상황에서도 섣부르게 판단을 내리지 않고 쉽게 고개를 숙이지 않는다. 늘 생각이 깊고 말과 행동에 있어 진중한 편이다. 이는 그의 잔잔하면서도 절제된, 격식 있는 말투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결단력 있는 단호함. 그의 인격은 마치 잘 벼린 칼날처럼 냉정하고 단단하다. 남들이 보기엔 다소 차갑고 무정해 보일 수도 있으나, 실제로도 쉽게 정을 주는 성격은 아니다. 늘 한 발짝 떨어진 시선으로 사태를 바라보며, 때론 자기 자신에게조차 매정할 만큼 객관적이다. 가능한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하고 그중 최선의 길을 선택해왔기에—법황청에서도 ‘가히 아낄 만한 인재’로 불리었다. 더불어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자신감을 지니고 있기에 한번 마음을 정한 일이라면 좀처럼 물러서지 않으며, 그의 고집을 꺾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정직한 태도. 거짓말을 하지 않고 그럴 필요성조차 느끼지 못한다. 솔직하지 않게 굴어 이득을 볼 일은 없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그가 하는 말이라면 마냥 진심으로만 받아들여도 문제 없다. 다만, 타인이 진실을 말하든 말든 그에 관여하려 들지는 않는다. 한 번 신뢰를 잃은 상대에게는 다시 마음을 열지 않는 과단성 있는 태도를 가진 편이다.

 


 

<기타>

 

00. 아제로

 

- 이름은 본명이 아니다. 현재는 자유 용병으로 살아가며, ‘제로’라 불리고 있다.

- 제3자에 해당하는 완전한 타인의 부상이나 희생에 대해서는 이상하리만큼 비교적 둔감한 편이다. 이런 면 때문에 모험가 시절, 냉혈한이자 성격이 거칠다는 평을 종종 들었고 실제로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긴 일도 적지 않았다. 타인과 협동하는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한 그는 자연스레 혼자 활동하는 방식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자신과 대등한 위치에 있는 동료들과 협력하는 것보다는 명확한 명령 체계 안에서 움직이는 부하를 거느리는 쪽이 더 성향에 맞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 웬만해서는 잘 웃지도, 울지도 않는다.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굳이 드러낼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쪽에 가깝다. 다만 연인에게만큼은 보다 솔직한 모습을 보여야 신뢰를 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최근 들어서는 표정 변화가 눈에 띄게 많아졌다.

- 마력을 제대로 제어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어린 시절부터 맨몸으로 화염을 다뤄왔던 영향 때문인지 일반적인 사람들보다 체온이 높은 편이다. 그 탓에 알코올에는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라 술을 즐기지는 않는다.

- 음식에 대한 욕심이 없는 편이라 허기를 느낄 때만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는 정도로, 법황청에서 근무하던 시절에는 제공되는 식사만으로 충분했기에 한동안 식비가 들지 않았던 적도 있었다. 이와 별개로 체격이 있는 만큼 먹는 양 자체는 평균보다 다소 많은 편이다.

 

01. 세드릭

 

- 단 하나뿐인 파트너이자 연인. 서로를 가장 잘 아는 동시에 여전히 더 알아가고 싶은 상대. 지금의 ‘제로’를 알고 있는 사람은 어쩌면 세드릭 단 한 사람뿐일지도 모른다.

- 처음 만났을 당시의 인상은 가히 최악에 가까웠다. 서로 여태 만나온 적대적인 이들 중 마주했을 때 가장 기분 나쁜 상대라 여겼고, 말다툼과 충돌이 끊이지 않았다. 얼굴만 마주쳐도 인상을 찌푸리고 으르렁대며 부딪히기 일쑤였으며 한쪽이 일방적으로 무시하고 외면하는 일이 반복되곤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각자 품었던 과거를 정리하고 마음의 무게를 조금 덜어낸 채 다시 마주했을 때 두 사람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서로를 대하기 시작했다. 그 변화는 빠르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다가왔고 서로에게 인간적인 호감을 느끼기까지는 이상하리만치 오래 걸리지 않았다. 서서히 관계가 깊어지던 어느 날, 아직 두 사람을 한 단어로 정의내리기 애매했던 그 무렵 아제로는 조용하고 담담한 어조로 세드릭에게 곁을 내어달라는 마음을 전했다.

- 지금의 두 사람은 서로를 이정표 삼아 목적지도 기약도 없는 여정을 함께 걷고 있다. 이마저도, 둘이기에 충분했다.

 

02. 소속

 

- 과거 화재 사건 이후 아제로는 잠시 방황하다 모험가 길드 소속으로서 살아가기 시작했다. 각지의 의뢰를 받아 용병 활동을 이어가며 삶을 유지해왔으나 정처 없이 떠도는 생활은 그의 성향과는 어딘가 맞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그의 실력을 전해 듣고 주시하던 법황청으로부터 경비대장 직책에 대한 스카우트 제안이 들어왔고, 아제로는 별다른 고민 없이 이를 승낙하였다.

 

- 오랜 시간 준비해 온 복수를 마무리한 뒤, 현재는 자유 용병으로서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채 파트너와 함께 다시 세상을 걷고 있다.

 

03. 직업 · 무기

 

화염술사

 

- 어릴 적부터 스스로 화염 마법을 터득한 그는 현재 맨몸으로도 충분할 만큼 강한 화력을 구사할 수 있다. 불을 다루는 실력은 단연 탁월하며, 케인 없이도 충분히 전투가 가능하지만 체내 마력을 보다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장시간 전투에서의 소모를 줄이기 위해 보조 도구로서 케인을 사용한다. 전투 시에는 반드시 전용 장갑을 착용하는데, 전투가 끝난 뒤에는 그을음과 화염 자국으로 인해 대부분 일회성으로 소모되곤 한다. 참고로 본인의 불에 본인이 다치는 일은 없다.

- 자유 용병으로 살아가는 지금으로서는 더 이상 화염법을 사용하지 않는다. 과거의 자신을 고향에 두고 온 채, 두 번째 여정을 시작하고자 하는 의지가 그 선택에 담겨 있다. 한때 손에서 놓지 않던 케인 역시 성도의 어딘가에 조용히 내려두고 왔다. 가끔 무의식적으로 화염법을 사용하려는 반사적인 움직임이 나타나긴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이미 놓아버린 힘이지만, 몸 어딘가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흔적처럼 가끔 고개를 드는 듯하다.

 

대검전사

 

- 법황청 경비대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을 무렵 그는 법황청으로부터 하사받은 대검 한 자루를 손에 쥐게 되었고 잠시 동안은 화염법과 병행하여 대검술을 익히기도 했다. 다만 당시에는 워낙 화염술사로서의 위력이 탁월했던 탓에 굳이 검을 쓸 필요가 없었고, 실제로 그가 대검을 들고 전장에 선 모습을 본 사람은 없었다.

- 케인을 내려놓고 대검을 택한 지금, 선천적으로 타고난 체격과 빠른 판단력을 살려 검을 휘두르는 솜씨는 매우 능숙하다. 순수 능력만으로 보자면 여전히 화염법이 더 강력하지만 본인은 굳이 그 힘을 다시 꺼내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과거>

 

  세상은 종종 너무도 조용하게 타오른다. 그 불은 울부짖지도, 피를 탐하지도 않으며, 다만 한 아이의 가슴속에서 오래도록 꺼지지 않는 재가 되어 남는다.

  왕국의 심장부라 불리는 찬란한 수도. 밤이 되어도 불빛이 꺼지지 않는 돌로 쌓인 거리와, 장중한 종소리가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교단의 첨탑 아래에서, 누구보다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은 조건 속에 한 아이가 태어났다. 치안부 대장이라는 막강한 권위를 지닌 아버지와, 언제나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로 아들을 보살피던 어머니. 사람들은 그를 두고 ‘품위 있는 가문의 고결한 자제’라 불렀고 예절과 학문, 격식과 위엄을 빠짐없이 주입받으며 누구보다도 바른 자태로 자라나는 듯 보였다. 그러나 그 모든 겉모습은 단지 거대한 저택의 외벽을 따라 그려진 허울 좋은 장막에 지나지 않았다.

  문이 닫히고 커튼이 드리워진 실내에서—그 집은 무너지는 숨소리와 깨지는 비명의 잔향으로 가득해 짙고 무거운 어둠의 형태로 소년의 어린 시절을 갉아먹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외부에서 보이는 근엄함과는 달리 집에서는 폭력과 위협의 화신이었다. 언제나 권위의 이름 아래 분노를 휘둘렀고 말이 통하지 않으면 손이 나갔으며, 심기가 불편하면 하인들이든 가족이든, 심지어는 자신을 가장 따르던 부인조차도 예외는 아니었다. 쇠붙이가 부딪히는 소리와 깨진 유리의 잔해, 숨을 참고 무릎을 꿇은 채 공포에 떨던 하인들의 표정은 점차 소년에게 익숙한 풍경이 되어갔다. 

 

  그는 점점 조용해졌고 언제부터인가 울음보다 침묵이 더 편해졌으며 나이가 들수록 시선은 점차 공포 너머를 보게 되었다. 점점 여위어 가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며 어린 소년은 그 상황을 어떻게든 바꾸고 싶었다. 누군가는 도와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래서 그는 주변 어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고자 말을 꺼냈고, 하인에게, 친척에게, 성도의 치안대원에게까지 손을 내밀었지만 돌아오는 건 항상 고개를 돌리는 시선과 침묵뿐이었다. 왜냐하면 그 괴물 같은 아버지가 바로 성도 치안의 총책임자였기 때문이다. 누구도 감히 그의 권위에 맞설 수 없었고, 도와달라는 어린아이의 외침은 권력 앞에서 허공에 흩어지는 바람이 되었다. 그 날 이후, 소년의 마음속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웠다. 아버지를 더는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다. 사랑도 애증도 아닌, 남은 것은 증오와 분노. 그 존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자신과 어머니에게는 내일도 미래도 없다는 절망에 가까운 결론이었다. 하루하루 살아남는 것이 목적이었고, 언젠가는 어머니와 단둘이 이 지옥에서 벗어나겠다는 간절한 염원을 품게 되었으며 그 염원은 결국 ‘살해’라는 단어로 구체화되었다.

  소년은 몰래 고가의 마법서들을 사들였다. 검이나 독약은 흔적이 남고 무엇보다 실패할 가능성이 있었다. 하지만 화염은 달랐다. 확실하고 흔적조차 남기지 않으며 모든 것을 태워 없애는 마지막 선택지였다. 소년은 숨죽인 밤마다 촛불을 밝히고 내열 소재 처리된 가죽 제본에 싸인 고서들을 펼쳐 읽었다. 그의 화염은 흔들리며 타오르는 생명력을 닮지 않았고, 증오와 침묵의 무게를 안은 채 적막 속에서 자라났다. 그 밤들 속에서 소년은 누군가를 죽이기 위한 주문을 되풀이해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그 날이 왔다. 열일곱이던 어느 날 비 내린 거리의 물기가 아직 마르지 않은 시각, 아버지는 술에 잔뜩 취해 저택으로 돌아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울려 퍼진 고함은 그날따라 유독 날카로웠고 부서지는 가구와 깨지는 잔소리 속에 실내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그 외침은 소년의 내면을 오래전부터 쌓아온 벽처럼 내려앉게 만들었고, 마침내 그는 일어나 조용히 복도 너머로 나아갔다. 그 순간 날아온 휘장이 걸린 액자가 벽에 부딪히며 산산조각이 났고 유리 파편 하나가 그의 뺨을 가르듯 그었다. 따뜻하고 축축한 피가 흐르자 마치 명령처럼 그의 손이 올라갔다. 반사적으로 준비되어 있던 주문이 입술을 떠나자 그토록 갈망했던 불이 손끝에서 튀었다.

 

  그러나 그 순간, 어머니가 소년을 보호하고자 아버지를 막으려 달려들었다. 화마는 무자비했다. 불꽃은 두 사람을 모두 집어삼켜 순식간에 거실을 불지르고 저택 전체로 번졌으며, 어째서인지 너무도 쉽게, 너무도 빠르게, 모두의 형체를 불태워 갔다. 소년은 공포에 질렸다. 그는 태우는 법만을 배웠고 불을 멈추는 법은 몰랐다. 소년은 감당할 수 없이 떨리는 몸을 겨우 이끌어 가죽으로 싸인 내열 마법서 몇 권을 쥔 채 흩날리는 재를 발자국 삼아 무너지는 저택을 등지고 도망쳤다.

  이 사건은 왕국 전역을 뒤흔든 ‘수도 귀족가 화재 참사’로 널리 퍼졌고, 그 집의 모든 식구는 하인까지 포함한 전원 사망으로 종결되었다. 하지만 몇몇 고위 수뇌부는 진실을 알고 있었다. 현장에서 수습된 시신들 사이에 그 집 독남의 것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사건이 일어난 며칠 뒤 한 소년이 조용히 그들을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는 무너지는 목소리로 한 가지를 요청했다. 살아 있다는 사실을 세상으로부터 감춰줄 테니 남은 재산의 일부를 넘겨달라고. 그들이 이를 받아들인 이유는 단 하나치안부의 수장이 수년간 자행한 가정폭력과 학대, 그리고 그걸 묵인한 사회가 세상에 알려진다면 그 누구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는 것을 그들 스스로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소년은 받은 유산의 대부분을 들여 수도 외곽의 작은 숲을 매입했고, 결계를 쳐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으며 어머니의 유해를 그곳으로 옮기고 조용히 묘를 세웠다.

  이후 소년은 세상으로부터 사라졌다. 그의 이름은 더 이상 기록되지 않았고, 그를 아는 자들도 하나둘 입을 다물었으며, 오래지 않아 세상은 그를 죽은 자로 기억하게 되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한때 타오르던 죄를 품고 잊혀진 채 세상을 걷는 한 남자의 긴 속죄록이다.

 


 

  불꽃은 모든 것을 태우며 사라졌고, 사건 이후 그는 이름을 버렸다. 이름은 곧 누군가의 증거이며 누군가를 찾을 수 있는 실마리였고, 무엇보다 누군가의 죄를 입증할 수 있는 자취이기도 했다. 살아남은 자로서 그는 기억을 가진 채 도망쳐야만 했고 그가 세상에 남긴 유일한 흔적은 잿더미 속 어딘가에 묻힌 불타버린 과거와 더 이상 불리지 않을 어린 이름뿐이었다. 방랑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유랑 끝에 그는 한때 은혜를 입은 어느 노인의 손에 이끌려 수도의 밖, 모험가들이 모이는 거리 끝 작은 접수처 앞에 섰다.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자는 길드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단 하나의 말에 접수대 위에 비치된 오래된 종이와 잉크 냄새가 배인 깃펜 앞에 선 그는 약간은 굳은 손끝으로 새 이름을 적었고, 그것은 종이 위에 남겨진 자국이기보다 두 번째 삶을 살아가게 된 그가 이 세계에 처음으로 남긴 가장 미약한 자취에 가까웠다. 

 

  모험가로서의 첫 시절은 냉혹하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 경험으로 채워졌다. 하지만 놀랍도록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경악하거나 가슴을 움켜쥘 때에도 그는 단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시신을 수습했고 피로 번진 검은 옷자락을 털어내며 서류를 건넸다. 모든 일이 그런 식이었다. 피를 흘리는 동료를 두고도 단 한 번도 뒤돌아본 적 없으며 어설픈 동정으로 인해 실수를 반복한 적도 없었다. 그러한 그의 행동은 차가운 평판을 남겼고 이름이 오를수록 수군거림 또한 길어졌지만 정작 그는 그러한 반응에 단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일련의 냉정함은 곧 ‘실력’이라는 이름 아래 길드 내에 퍼졌고, 그에게는 다시금 더 위험하고, 더 민감하고, 더 까다로운 의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길드는 그를 좋아하지 않았으나 동시에 무시할 수 없었다. 그를 적당히 부려먹고 싶어 하는 관리자들은 늘 ‘혼자 하기엔 어려울 겁니다’라는 이유를 대며 파티 구성을 강요했지만 그는 언제나 단호했다. 혼자가 낫다는 말은 비단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정을 준 그 누구도 잃고 싶지 않다는 감정의 왜곡된 표현이었고, 동시에 아무도 곁에 두고 싶지 않다는 냉정한 자기 방어이기도 했다. 다시는 대가를 지불하고 싶지 않았다. 그를 아는 자들은 그를 ‘잔인하다’고 불렀고, 그를 모르는 자들은 그를 ‘뛰어난 자’라 평했다. 이는 어느 쪽도 틀리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은 흐름 자체로서 과거를 봉인해주지 않았다. 제아무리 고요한 숙소에 몸을 눕혀도 내면 어딘가에서는 불길이 계속해서 타올랐다. 눈을 감으면 귓가를 스치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과거의 소음들이었고 그것은 언제나 마지막엔 잿더미가 되어 끝났다. 잠에서 깨어난 순간조차도 폐부에 남은 연기 냄새처럼 그 모든 기억이 끈질기게 따라붙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성장했고, 성장해야 했다. 화염은 그의 두 손에 남겨진 유일한 재능이었고 그것만이 삶을 지탱할 수단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더욱 맹렬하게 불의 심장을 쥐고 흔들 줄 아는 이가 되었다.

 

  그런 그를 유심히 지켜보던 자들이 있었다. 자신이 쌓아올린 불명의 무게를 이끌고 한없이 외곽을 떠돌고 있을 무렵, 법황청의 조정관이 그를 찾아왔다. 단정한 제복을 입고, 감정을 꾹 눌러 담은 말투로 그는 제안을 건넸다. 바람에 휩쓸리는 불씨보다 수호의 횃불이 되어보지 않겠느냐는. 아제로는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고민은 없었다. 복종도 아니었고, 충성도 아니었다. 그것은 오히려 그가 다시 바라던 '소속'과 '정착'이라는 감각에 대한 갈증이었고, 비로소 허공을 떠도는 먼지가 아닌 하나의 좌표가 된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그는 법황청의 경비대장이 되었다. 검고 붉은 제복을 갖춰 입은 그의 아래엔 늘 신성한 은빛 갑주를 입은 수하들이 줄지어 있었고, 명령은 언제나 일사불란하게 내려졌으며, 그 안에 내재한 권위는 어떤 순간에도 균열 없이 유지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결코 누군가에 의해 만들어진 질서가 아니었다. 되려 자기 스스로에게 부여한 질서이자 강요당한 생존의 방식이었다. 그는 다만 살아남고 있었을 뿐이다. 이름을 바꿔도, 소속을 옮겨도, 그날의 불꽃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으며 조용히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느 순간, 마치 잿더미 아래 잠들어 있던 불씨가 아스라이 장막을 뚫고 손길을 내밀듯 그가 오래도록 기다려왔던 순간이 조용히 다가왔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고, 스스로조차도 명확히 정의하지 못했던 ‘그 날’은 멀고도 낯설어진 도시의 이름 아래 불현듯 도착했고 아제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법황청의 명령이었고, 경비대장으로서의 임무였으며, 표면적으로는 얼핏 당연한 듯한 이유가 덧붙여졌지만—임무가 무엇이든 간에 그 도시로 돌아갈 명목이 생긴 이상 그는 그 순간부터 더 이상 법황청의 경비대장이 아니었다. 이건 그의 과업이 아니라 어린 소년의 결착이었다. 숙명처럼 가슴 어딘가에 말없이 숨죽여 기다리던 그날의 화염이 마침내 다시 눈을 뜨는 시간이었다.

 

  성도는 모르는 그를 맞이했다. 새로이 덧칠된 지붕과 정제된 거리의 선들, 계단마다 반사되는 햇살의 각도까지도 이전과 같았고 그 가운데를 지나는 사람들의 무관심마저도 똑같았다. 그러나 이 도시를 감싸는 공기는 여전히 한결같이 눅눅했으며 그 속에 감춰진 부패의 온기는 과거와 다를 바 없이 스며들어 있었다. 아제로는 오래된 비단 위에 번져있던 핏자국처럼 그 안에서 자신을 짓누르던 것과 동일한 냄새를 맡았다. 성도 안으로 진입하는 순간부터 이미 모든 계획은 짜여져 있었으며, 복수는 충동이 아닌 사전 각본이었다. 그는 차분한 걸음으로 성문을 지나 태연한 척 삼엄한 경비 사이를 뚫고 중심부로 향했다. 수뇌부의 집무실. 과거 어린 시절, 아버지가 문을 열고 들어가곤 하던 곳이었으며 그가 문밖에서 기다릴 때마다 어김없이 형체 없는 권력이 웃음소리와 함께 흐르던 장소였다. 그곳에서 수많은 결정이 내려졌고, 그 결정 중엔 어린 소년의 고통을 외면한 조치도 포함되어 있었다.

 

  불꽃은 망설이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손짓. 그의 손끝에서 응축된 마력은 마치 수면 아래 숨어있던 오래된 분노를 깨우듯 퍼져나갔고, 순식간에 실내는 뜨겁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화염은 벽을 타고 기둥을 감쌌으며, 명료한 분별력은 증오의 언어로 변모하여 방 안의 공기조차 타들어가는 듯한 비명을 질렀다. 그가 마주한 과거의 유산들—사죄하지 않은 자들, 죄를 나누고도 무책임하게 웃고 있던 자들, 아이가 소리 없이 꺾이던 걸 방조한 자들—그 모든 ‘권위’를 불은 주저 없이 집어삼켰고 남은 것은 검게 그을린 가구와 일그러진 형체의 잔해뿐이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단지 조용히 등을 돌려 문을 닫았을 뿐이고, 그 안의 불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으나 외부에는 아무 기척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그 자리에 존재하던 소년의 흔적까지 그을음조차 남기지 않은 채 사라졌다. 아제로는 케인을 버렸다.

  새카만 로브를 뒤집어쓰고 대검 한 자루를 등에 멘 채 그는 항구로 향했다. 다시금 바라본 세상은 파아랬고 그 청명한 하늘빛 아래 물결은 유난히도 눈부셨다. 잔잔하게 부서지는 햇살은 이따금 그의 로브 자락을 간질였고, 선착장에는 아직도 다음 바다를 꿈꾸는 이들이 화물 사이를 오갔다. 과거의 소년은 사라졌다. 아버지를 두려워하던 아이, 방 안에서 어머니의 손끝을 붙잡고 숨죽이던 아이, 굳은 입술로 재를 삼키던 아이는 불 속에서 소멸했고, 대신해 남은 것은 단 한 명. 이름을 버린 그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숨을 들이쉬고, 햇살을 등지고, 고요히 세 번째 삶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아무도 몰랐다. 그날 성도에 일어난 작고 조용한 참극을, 그토록 오랜 분노가 완성한 복수를, 재처럼 흩날리다 사라진 화마의 형상을.